중구투어
한국이민사박물관
- 작성자 :
- 관리자
- 작성일 :
- 2010-12-13
자막
안녕하세요? 중구생생투어 리포터 전미란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소개할 드릴 곳은요 미주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여 해외에서의 선조들의 개척자적인 삶을 기리고 그 발자취를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인천 시민과 700만 해외동포가 땀과 정성으로 건립한 국내 유일의 한국이민사박물관입니다. 함께 가보실까요~ 한국이민사박물관(The Museum of Korea Emigration History) 한국이민사박물관은 월미공원내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인천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45번 버스 또는 720번 버스를 이용해 해사고등학교 앞에서 하차하시면 됩니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미지의 세계로”란 주제의 제 1 전시실, “극복과 정착” 과정을 볼 수 있는 제 2 전시실, “또 다른 삶과 구국 염원”을 볼 수 있는 제 3 전시실, 700만 해외동포들의 근황과 염원을 볼 수 있는 제 4 전시실이 있습니다. 일일 평균 500 여명이 관람하는 한국이민사박물관. 제가 찾아간 날도 학생들의 단체관람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요. 해설사 선생님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인천항이 1883 년에 개항을 해서 서구문물을 들여오기 시작을 했고 그러다 보니까 이 중구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가 되는곳이, 우리나라의 중심지가 되는곳이 이곳 중구예요. 제1전시실은 지금 앞에 입구에서 보시다시피 당시 인천의 모습과 그 다음에 우리나라에 첫 이민이 이루어지기까지 국내와 하와이의 정세를 같이 소개를 하고 있고 이제 뒤쪽에 가시면 우리나라에서 첫 이민자들이 타고갔던 갤릭호의 모형을 통해서 당시 이민을 가셨던 분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여정을 겪어서 하와이에 도착하셨는지의 과정을 체험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제1전시실에는 조선은행권과 주화,집조여권등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공식이민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국내정세와 하와이 상황에 대해서 잘 설명이 되어 있었는데요. 내리교회의 2대 목사님이 바로 존스목사님이세요. 그래서 존스목사님이 교회 강론중에 이 공고내용을 설명을 하십니다. 그래서 하와이로 이민을 가면 모두가 잘 살수 있다라고 계속 얘기를 해요. 그래서 갤릭호의 모형을 만들어 놓고 이 안에 들어가면 하와이로 해서 어떻게 이분들이 힘들게 하와이에 도착을 했는지를 보실 수가 있는데, 자~ 안으로 들어 가실께요~ 여기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가는 첫 이민선인 갤릭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해서 꼭 타야만 했던 배. 과연 그 안은 어떨까요? 갤릭호 안에서 이민가신 분들의 실제 사진과 그들이 가슴에 품고 갔던 가족사진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방금 보신 이 사진들과 물건들은요, 실제로 이민가시던 분들의 얼굴이고 실제로 사용했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는거라고 하는데요. 전시되어 있는 내용을 한번 저도 이곳에 와서 보다보니까 당시의 상황이 느껴지면서 마음이 좀 아프네요. 그 옆에서는 당시에 배에 탔던 함하나 할머니의 생생한 육성 증언을 들을수가 있었는데요. 소말 냄새가 나고, 구역질이 나고,밥을 먹으라고 빠기가 땡땡이를 땡땡땡 치면 다른 사람들은 밥을 가져와 먹는데 나는 구역질이 나고, 두 내외가 드러누워야 아래층,윗층 맨 아래층에는 내가 눕고 정말 너무나 가슴아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이셨을것 같아요. 할머니 육성 들어보니까 어때요? 저 같은 경우에는 한 끼를 굶어도 힘든데 이 할머니 같은 경우에는 냄새나는 배 속에서 열흘간 굶었잖아요 그래서 그 당시의 힘들고 냄새나는 그런것을 저도 조금은 느낄수 있었던것 같아요. 갤릭호의 경험이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요 빨리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는데요. 드디어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에 도착 했습니다. 제2전시실에 들어오면 갤릭호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에 정착하는 한인 이민자들의 생활모습이 펼쳐지는데요. 새벽 4시 30분 기상 싸이렌 소리로 하루가 시작된다.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 향하는 사탕수수밭 오늘까지 자연생 잡목을 자르고 정리하는 작업을 마쳐야 한다. 하와이말로 “루나”라고 부르는 독일인 십장이 나를 감독한다. 작업중에는 허리를 펴거나 담배를 피우는 시간도 허용되지 않아 더욱 힘이든다. 말이 통하지 않는 우리는 목걸이처럼 생긴 신분증으로 출석체크를 한다. 나의 번호는 14401번, 하루 10시간씩 엿세동안 일하면 한달벌이는 17달러. 그렇게 힘든 과정을 극복하고 한인 이민자들은 정착을 하게 되는데요 제 2 전시실에서는 하와이에 정착한 한인들의 애환과 개척자로서 미국 전역에 뿌리를 내린 발자취, 그리고 한인학교를 연출해 놓은 교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앉아 있는 이 교실이요 바로 한인학교인데요. 한인이민자들은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에 비해서 하와이땅에 비록 늦게 도착은 했지만 먼저 학교를 세울만큼 높은 교육열을 자랑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수준높은 교육을 받은 한인 2, 3세들이 미국내 사회 진출을 하면서 한인사회의 위상을 높이게 된 기틀을 마련하게 된거죠. 제 3 전시실에서는 하와이 이민 이후에 멕시코와 남미로까지 확대되었던 이민사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멕시코의 에네켄농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그 당시의 고통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또한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몸을 바쳤던 선열들의 활약상을 볼 수가 있는데요 고향을 떠나 낯선 이국땅에서 힘겨운 생활을 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간 한인 이민자들. 그들은 자치조직을 만들어 서로 격려하고 상부상조하며 조국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다. 자신의 삶도 굉장히 힘들었을텐데 거기에다가 나라까지 잃고 그야말로 정말 처절한 상황이 아닐수 없는데요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조직을 만들어서 구국운동에 나서고 또 독립자금까지 모으고, 정말 존경스런 분들이다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한톨 한톨 돈을 조금 조금씩 모았잖아요. 오랜 세월이 돼서 그 돈이 고국으로 왔을텐데 그걸 보면서 참 가슴아프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여기와서 그걸 알게 돼서 참 감동깊고요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인천이 진짜 뜻 깊은것 같아요.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개척정신이 많았다는것을 느꼈고, 앞으로도 우리 후손들이 이 박물관을 꼭 봐가지고 우리 선조들이 이만큼의 개척정신이 있었다는것을 인천시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들이 이 박물관을 잘 보고.. 인천시민으로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인천시민들이 이런내용을 잘 모르는데 이런계기가 확산돼서 인천시민들이 우리 월미도에 그냥 단순히 관광 오는것이 아니라 최초의 우리나라의 암울했던 시절을 조명하고 또 그걸 토대로 해서 애국심이 생기고 인천을 사랑하는 그런 마음이 생겼으면 좋겠다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 민족의 끈기,인내, 참 끊을 수 없는 우리 민족의 그 한이 어린 우리 민족사를 보고나니까 참 어딘가 모르게 숙연해지고 우리 민족이 이렇게 오늘에 이르러서 이 영광을 누리기까지 이 선조의 고생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지금 있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합니다. 참으로 이민사박물관 여길 보고나서 많은것을 알게 됐습니다. 선조들의 개척자정신을 되돌아보고 또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곳. 한국이민사박물관에 직접 찾아 오셔서요 한국인의 긍지와 자부심 느껴보시는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