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중구 구정홍보관

통합검색

인천 중구

-℃-

중구포커스

중구 문화재탐험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0-01-25

자막

인터뷰) 인천의 중심지였던 중구가 이런 과거의 전통적인 것들을 살려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사업들이 저한테는 굉장히 인상적이었고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런 일들을 해 나갔으면 좋겠고, 인천은 또 개항의 역사적인 도시이므로 많은 분들이 찾아와서 봤으면 좋겠어요. 중구청에서 이러한 일들을 많이 알리는 것도 중요할 거 같아요. ♫문화재 찾으러 어디로 갈 까요~ 중구의 문화재는 어디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역사의 숨결 따라~ 조상의 얼을 따라~ 새롭고 재밌는 우리의 문화재~를 배우는 시간, 중구 문화재 탐! 험!입니다~ 오~ 이게 뭐에요? 어? 보. 물. 지. 도? 우리 인천 중구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문화재를 찾아서 스티커 지도를 완성해주세요! 뭐니 뭐니 해도 이 중구 탐험의 시작은 이곳이 아닐까 싶은데요.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의 기착지, 바로 인천역입니다. 1호선 하루 수송 인원 30만명. 수도권과 우리 인천, 중구 5대양 6대주의 나들목 인천항을 이어주며 서민의 소중한 발이 되어오고 있는 인천역. 옛 러시아 영사관 터인 인천역에서 1899년 9월 18일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이 출발했는데요. 경인선이 다니기 전에는 8시간에서 12시간까지 걸리던 서울과 인천 사이를 1시간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대단한 혁명이었겠죠? 자! 맞죠? 스티커 주세요 스티커. (문화재만 된다니까요!) 어~ 그렇다면 비장의 무기, 애교로 아잉~ 힌트라도 주세요~ (음~ 빨간 오토바이?) 빨간 오토바이요? 아하~ 우체국! 초창기 우편배달부는 오전 9시 정각, 서울과 인천에서 동시에 출발해서 오후 1시 지금의 오류동에서 만났다고 합니다. 우편물을 교환하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는 방법으로 꼬박 9시간을 걷고 뛰어서 배달이 이루어졌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우리가 배달의 민족인가요? 이동 통신기기의 발달로 빨간 우체통의 추억이 시들해지긴 했지만요. 우표 붙인 편지 한 통, 희노애락이 담긴 온갖 소식들이 모여 있다가 기다리고 있는 주인에게로 가져다주는 우체국만의 특별함! 역사의 근대 건축 문화재여서 그 특별함이 더욱 빛나는 것 같습니다. 일본인이 우편사무를 취급하기 위해 일본영사관 내에 처음 우체국을 설치한 후 1923년 교차로의 가각부분인 지금의 위치에 신축하였는데요. 르네상스 양식의 우체국은 석재와 콘크리트를 주 재료로 ‘ㄱ’자 평면에 모퉁이 부분을 돌출시켜 입구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고요. 현재도 인천중동우체국으로서 서민들의 온갖 사연을 전해주는 우편업무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와우, 스티커~ 짠~ 드디어 첫 번째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그런데요 중구에 문화재가 이렇게 많이 있었나요? 현재 문화재청에 등록된 인천 중구의 문화재는 20여개! 그중에서도 1883년 개항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답게 근대문화유산을 많이 볼 수 있는데요. 1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가 지정문화재 뾰족 돔 얹은 아름답고 고고한 성전, 사적 제 287호 답동성당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빌렘 신부가 초대 본당 신부로 부임하면서 답동 언덕에 세워진 답동성당. 1887년에 세워졌으며 주재료는 적벽돌과 화강석을 사용한 고딕양식! 현재 모양의 성당은 1937년에 옛 성당 건물을 보존하면서 외벽을 벽돌로 쌓아 올린 것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을 띠고 있는데요. 두 차례에 걸친 내부공사가 있었지만, 비교적 옛 모습대로 보존되어 있답니다. 문화재청에 등록된 우리나라의 사적 성당은 모두 일곱 곳. 그 중 하나인 답동성당은 중구 시민들이 서울의 명동성당이나 대구의 계산 성당을 찾아가지 않아도 20세기 초에 우리나라에 지어진 종교건축의 보편적인 모습을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경건한 분위기의 성당 내부와 아름답게 그려진 유리화, 반질거리는 손잡이에서 중구 답동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귀한 문화재랍니다. 문화재는 1등, 2등, 3등 이렇게 순위를 매길 수 없을 만큼 모두다 소중한 우리의 유산이지~만! 사적은 국보나 보물 다음으로 귀한 거니까. 스티커 두 개정도는 붙여줘야겠죠? (안돼요! 문화재 하나에 한 개씩입니다.) 하나만 더 주세요~ (안돼요.) 에이, 알았어요! 어쨌든 하나 더 붙였습니다. 다음은 어디로 가죠? 복합문화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된 중구 해안동 옛 창고지대, 인천 아트플랫폼! 자~ 또 찾았습니다 문화재! 주세요 스티커. 어? 왜 하나에요? 건물이 이렇게 많은데. 저 선생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여기 건물이 굉장히 많은데요. 이거 전부다 문화재 아니에요? 전부 다는 아니고요. 한 개 건물이 문화재로 등록돼 있습니다. 아 그래요? 아쉽네요. 그런데 이 아트플랫폼에 어떻게 해서 이렇게 문화재를 활용하게 된 거에요? 이 일대에 도시의 역사성을 그대로 보존을 하되 문화적으로 좀 재활용을 해보자라는 시민들의 뜻과 인천시의 의지가 합쳐져서 이 아트플랫폼이 재탄생하게 되었고요. 과거의 역사성을 보존은 하지만 현재적으로 다시 한 번 재해석하는 작업으로 인천아트플랫폼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아 정말 좋은 생각인거 같습니다. 우리의 문화재 소중히 가꾸고 지키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은 일본과 국내 연안의 물류수송을 독점하기 위해 1888년에 건립된 현존하는 사무용 근대건축물! 삼각형의 페디멘트 주출입구를 중심으로 좌우대칭 형태와 모임지붕이 특징인데요. 1902년에 지어진 인천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양관, 군회조점과 함께 보수공사를 거쳐서 아트플랫폼의 일부로 사용되고 있는데요. 아트플랫폼은 지역예술인들이 창작한 다양한 문화와 개항장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답니다. 아트플랫폼이 자리 잡은 중구 해안동과 중앙동 일대는 해운업을 하던 해운회사의 건물, 한때 인천경제는 물론 우리나라 전체 경제를 좌우했던 은행건물들이 무리지어 현존하고 있는데요. 오~ 은행! 또 찾았다~ 여기가~ 일본 제1은행. 찾았으니까 스티커 또 주셔야죠.~ 오~ 스티커! 자 이번엔 여기 정 가운데에 하나 또 붙였습니다. 돈은 없고 은행만 남아 있는 은행거리~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적 비즈니스 타운! 고종 광무 3년, 그러니까 1899년에 지어진 석조 건물로 조선의 금괴와 사금 매입 업무 대행 및 일본 영사관의 금고 역할을 담당했던 은행이라고 하는데요. 중앙에 반원형의 돔을 설치하여 좌우대칭으로 꾸며졌으며 전체적으로 후기 르네상스식을 본떠서 단순화한 건물이라고 하네요. 현재, 인천 한국 근대 최초사 박물관으로 조성 중인 일본 제1은행 역시, 일본인 니이노이에 다카마사가 설계한 건물로 모래, 자갈, 석회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자재는 일본에서 직접 가져와 만들었다고 합니다. 벽돌조 회벽마감과 목조트러스 위 일식기와, 모임지붕 형태가 특징인 고전적 절충주의 양식의 건축물! 면직물 중개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일본 상인들이 늘어나자 1890년 준공되어 그 해 10월에 개점하였고 일본이 한국의 금융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계획되어 세워진 은행인데요. 1954년에 상공은행과 신탁은행의 합병으로 발족한 한국흥업은행 지점으로 사용된 이후, 1992년까지는 카페 그 후 중고 가구 도매상이 임대하여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곳은 일본 제18은행 지점 안인데요. 볼거리가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곳이 은행이잖아요. 네. 그렇다면 금고도 있나요? 네 당연히 있죠. 이쪽입니다. 들어오시고요. 들어오시면 여기 역사가 담겨 있는 엽서가 전시되어 있고요, 뒤에를 보시면 1930년대에 개항장의 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아~ 그래도 금고인데 돈은 전혀 없는 건가요? 없지요. 하~ 아쉬워라. 그러면 선생님, 제가 인천 중구에 있는 문화재를 지금 찾고 있거든요. 네. 또 다른 문화재를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아~ 네. 알려드리죠. 바로 여기에

공공누리:출처표시 (제1유형)

인천중구청에서 창작한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출처표시

자료담당부서
홍보체육실 홍보영상팀  (032-760-7124)
최종수정일
2020-02-28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패밀리 사이트 바로가기

  • GO
  • GO
  • GO
  •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