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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인물699 인천광역시 중구를 빛낸 인물들을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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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섭

인천 용리 태생으로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학교)를 거쳐 서울 보성고보를 졸업했다.
1925년에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학) 예과 B부를 졸업했으며 1927년 동대학 법무학부 철학과에 입학,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1930년에 졸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모교의 연구실 조수로 근무한 다음 1933년 3월에 초대 개성박물관장에 취임했다. 1936년부터 이화 여자전문 학교와 연희전문학교에 출강하면서 194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개성박물관장 자리를 지키며 우리나라 고고학분야와 미학 및 미술사 개척의 선구적 역할을 다했다.

그의 학문적 기초는 대학을 나와 미학연구실에 3년간 조수로 근무할 때 틀이 잡혔다.
그 무렵 규장각 도서를 샅샅이 뒤져 미술사 자료의 화론을 뽑기 시작했고 한편으로는 탑파 연구에 착수했다. 더구나 개성박물관장으로 부임한 것은 그가 한국고대미술과 고고학에 깊이 파고 들어가서 그 진수를 천명할 수 있는 본궤도에 오른격이 되는 것이며 우리 민족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큰 계기가 된 것이다.

그가 나타나 활동함으로써 그때까지 우리나라에서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전무하다 싶이했던 것을 깨우치게 되었으며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존중과 인식이 사회적으로 크게 계몽되고 싹트게 했던 것이다.

그는 신라계의 석탑이 목조에 서 기원하여 전탑을 거쳐서 제작되었으므로 신라계의 석탑에서는 목조탑과 전탑의 양식이 공존하고 전탑에는 목탑의 양식이 잔존하는 것이며 백제계의 석탑은 바로 목조탑을 모방하는데서부터 출발하였음을 양식의 고찰에서 그근거를 입증함으로써 한국의 석조탑에 관하여 뚜렷한 양식을 정립하였으며 오늘에 있어서 아무도 따르지 못하는 우리고대 탑파에 대한 이정표를 마련하여 석탑미술 연구에 새로운 길을 개척하였다.

그의 일생은 바로 한국미학의 정초를 확립하는데 바쳐졌고 한국적인 것, 한국적 특수성에 대한 의식탐구에서 출발한 그의 학자적 관심은 비로소 한국미학이라는 학문을 다른 인문과학이 도달했던 수준으로 이끌어 올릴 수 있었고 이점에서 한국미학은 고유섭을 기다려서 비로소 체계화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남겨 놓은 글들이 150여편에 이르렀으며 유고들을 모아 엮은 책들이 1940년에 [송도고적], 1948년에 [한국탑파의 연구], 1949년에[한국미술문화사론],1954년에 [한국화가론집성상.하]와 1963년에 [한국미술사급 미학논고]등이며 그의 업적은 상대의 물적 조형인 유물이나 대한 최초의 학문적 주목이 그에 의하여 비로소 이루어졌고 그가 일찍이 이룩한 영역의 업적은 오늘도 우뚝이 솟아 있어 후학들의 학문적 표적과 지침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1944년 6월 6일 개성박물관의 사무실 겸 연구실에서 갑자기 발병하여 6월 26일에 4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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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담당부서 :
문화관광과 문화예술팀  (032-760-6440)
최종수정일 :
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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