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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인물699 인천광역시 중구를 빛낸 인물들을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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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준

프랑스의 부유한 은행가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전학준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의 전교사명을 띠고 1900년 약관 27세의 나이에 인천에 당도했다.

그는 도착 즉시 답동 천주교 성당에서 경영해 나갈 인천박문학교를 설립하고 천주교신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자녀들에게 초급과정의 교육을 베푸는 일부터 착수했다. 4년후인 1904년에는 비로소 답동성당 본당신부로 취임했다.

초창기에는 박문학교를 유지ㆍ경영하는데 많은 고초와 희생을 겪어야 했다. 그것은 재정상의 경영난보다는 천주교에서 설립ㆍ경영하는 학교라는데서 많은 일반인들이 기피하는 현상을 보여줬기 때문이 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1914년에는 학교내에 여자부교사 6학급을 신축하고 이듬해에는 남자부교사 6학급까지 신축하여 날로 학생들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다음 1917년에는 남녀 두학교를 합쳐 인천박문학교라는 정식 명칭을 붙이고 설립자겸 교장에 취임했다. 이 학교의 특징은 제3자의 도움없이 오로지 전신부의 상속받은 유산만으로 만들어진 데 있다. 학교 를 궤도에 올려놓게 되자 1930년에는 바오로 수녀원을 비롯하여 본당을 포함한 고아원 등 본당의 기반을 이루는 모든 시설을 갖추고 대규모로 증축했다.

그리고 역시 사재를 기울여 용현동과 영종도 등지에 20여만평의 농토를 마련하여 보육원 운영을 위한 재정적 기반을 굳혀 놓았다. 1937년에는 증가일로에 있는 신자들을 위하여 오늘에 보는 바 같은 큰 성당건물을 준공하였고, 3층으로된 현대식 해성병원을 개설했으며 또한 박문유치원을 설립ㆍ개원했다.

이렇듯 많은 사재를 기울여 이고장을 위해 헌신하면서 육영가로서, 불쌍한 사람들의 어버이로서, 수도자의 지도신부로서, 오로지 영생구제에 전념해 온 그는 74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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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담당부서 :
문화관광과 문화예술팀  (032-760-6440)
최종수정일 :
2019-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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