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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인물699 인천광역시 중구를 빛낸 인물들을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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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례

인천태생으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탓으로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연초교)를 마치고 서울 정신여자 학교에 2년간 재학중 중퇴하였으며 그뒤 도일(渡日)하여 다시 진학의 길을 펴보려다가 여의치 못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한 다음 조도전대학(교외강의록) 2년과정을 수료했다.

가난하여 배움의 길을 걷지 못하는 이 나라의 어린세대들을 면학의 길로 이끌기 위해 친구이며 동지인 이옥녀여사와 함께 뜻을 같이하여 도원동 보각사 강당일부를 빌어 성냥공장이나 정미소에서 일하는 불우하고 가난한 소년소녀 100여명을 모아서 야학을 시작했다.

그러나 6개월간 계속하다가 일경의 심한 간섭과 보각사측으로부터의 나가달라는 독촉을 받고 해체해야 할 형편에 이르렀다. 박교장은 이들의 배움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고자 동분서주하던 끝에 유동 이흥선 정미소 창고자리를 빌어 여공 30명을 데리고야학을 다시 시작했으나 일경의 심한 탄압으로 해산명령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 1930년 일인의 토지를 임대차로 얻어 건축비 4백 80원의 기부를 받아 기공2개월만에 동명학원을 피와 땀으로 세웠다.

일제로부터 경영비 염출을 위해 구걸을 하다시피 했고 일경은 우리말을 가르친 다고 탄압을 계속하여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1945년 광복을 맞은 다음 해 6년제 학교로 승격되면서 인천시 동구 송림동 114번지에 소재한 지금의 교사로 자리를 옮겼다.교사와 졸업생과 재학생이 3위 1체가 되어 외양간을 교실로 개조하고 층층밭을 깎아 운동장을 만들었다.

이 학교는 창설이래 박교장의 일관된 교육이념과 탁월한 교육방침에 의해서 말씨고운 학교, 예절바른 학교로 전국에 이름이 떨치게 됐다. 1957년 인천시가 제정한 시민상을 수상했고 1964년 대한교련에서 특공상을 수상했으며 1966년에는「소년한국일보 」제정의 <훌륭한 어머니상>을 받았다.

같은 해 역시 제2회 경향교육상(도덕정서교육)을 수상했고 1971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장했으며 1982년 에는 한국일보제정 제1회「교육대상」을수상했다.튼튼치 못했던 학교재단을 확고하게 해놓고 83년 7월에 하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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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담당부서 :
문화관광과 문화예술팀  (032-760-6440)
최종수정일 :
2019-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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