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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인물699 인천광역시 중구를 빛낸 인물들을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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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득

미국 펜실베이니아 랭커스터 출생으로 1888년 펜실베이니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인 랭커스터 공립 병원에서 전문의 과정을 거친 다음 리챠드ㆍ엠ㆍ벤스신부의 주선으로 고요한 (B.J.Corfe)주교를 따라 1890년 인천항 제물포구에 도착했다.

영국성공회의 선교사업을 위해 미국인으로서는 첫발을 들여놓는 랜더스박사는 인천에 도착한 즉시 비교적 큰집을 세내어 그 가운데 두방을 입원실과 진찰실로 꾸미고 한국인 환자를 맞이함으로써 약대인 병원으로 별칭된 의료활동을 개시한 것이다.

그는 선교활동을 겸해서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는 한편 1891년 최초의 영어학교를 개설하여 40명의 학생을 4반으로 나누어 주 6회 강의를 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1891년 4월 현재의 송학동 3가 3번지에 성공회 인천 성당 건립을 착공하는 한편 100야드 더 올라간 자리에 병원을 착공하고 10월에는「성 누가 병원」을 개원했다.

불철주야로 환자치료와 영어강습을 쉬지 않고 감행하여 과로가 쌓임에도 불구하고 1892년에는 부모를 잃은 여섯살난 고아를 데려다 기름으로써 최초의 고아원의 효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또한 한국에 관한 연구에도 열중하여 1895년에는 <로사라 수트라> (염주경)등 3편의 불교문헌을 출판하기도 했다.
랜디스박사의 선교로 시작된 인천교회는 병자와 고아를 상징하는 구원의 선으로 일관되었다.
그는 잠시도 쉴 새 없이 진료에, 강의에, 저작에 눈 코 뜰새없는 나날을 과로가 겹치는 속에서 보내 다가 인천에 자리잡고 활동해 온지 10년이 안되는 8년만인 1898년에 32세란 아까운 나이에 애석하게도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의 헌신적인 선교활동과 의료 봉사의 정신을 받들어 그의 육신을 이고장 외국인묘지에 묻히게 했다. 그 또한 그것을 소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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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담당부서 :
문화관광과 문화예술팀  (032-760-6440)
최종수정일 :
2019-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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